미국의 디자인 컨설팅회사인 IDEO는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하는 산업디자인 영향력 순위에서 10년 이상 1위를 기록할 만큼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다. 이 회사를 상징하는 단어는 ‘이노베이션(혁신)’. 비즈니스위크는 “IDEO의 창조물은 창의력 프로세스 그 자체”라면서 “이 회사 직원들에게 일은 놀이이고, 가장 큰 규칙은 ‘규칙을 깨뜨리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주성식 기자 juhodu@wealthm.co.kr 세상에 노는 것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그래서 주중 업무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고 40대의 과로사 발생 비율도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회사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최소현 대표의 꿈은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creative consulting group)을 지향하는 퍼셉션의 직원들은 지금도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을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저는 당신에게 ○○○입니다 ‘저는 숲을 볼 줄 아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 퍼셉션을 이끌어가고 있는 최소현입니다.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경영하는 디자이너이며 디자인의 힘을 믿는 경영자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입니다.’ 최 대표로부터 건네받은 그의 명함 뒷면에 씌어져 있는 자신의 소개 문구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마지막 부분. 마치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의 관계를 연상시키듯 최 대표가 직접 특정 단어를 써넣어 명함을 건네받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인 셈이다. 업무상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경영자로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명확하게 그리고 오래토록 각인시킬 수 있는 독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대표자의 명함에서 볼 수 있듯 퍼셉션은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뭉친 회사이다. 비록 디자이너 수는 15명에 불과하지만, 자이툰 부대 출신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 저마다 갖추고 있는 넘치는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하나의 장이기도 하다. 심지어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갖는 회식조차도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교복을 입고 참석케 한 적도 있다고. 이처럼 뭔가 범상치 않은 구석이 많아 보이는 퍼셉션의 모습은 최 대표가 이 회사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네 줄짜리 흑백화면이 싫어서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최 대표가 졸업 후 처음 입사한 곳은 국내 굴지의 글로벌 IT기업. 그는 이 회사가 출시하는 거의 모든 가전 및 IT 제품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센터, 디자인연구센터 등에서 근무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 대표는 이곳을 떠나 창업된 지 얼마 안되는 벤처IT기업으로 회사를 옮겼다. 소위 대한민국 일등기업이라는 곳에서 높은 연봉과 함께 잘 나가는 산업디자이너로서 전도양양했던 그가 이 회사를 미련없이 그만두게 된 계기는 어찌 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무선사업부로 발령받은 후 처음 디자인을 맡게 된 한 휴대전화의 액정화면 때문이었습니다. 문자 메시지가 네 줄밖에 들어가지 않는 흑백 액정화면을 보니까 더 이상 이 회사에서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그래서일까? 새로 옮긴 벤처기업에서 그는 엄청난 열정을 갖고 업무에 임했다. 야근에 휴일반납은 기본이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디자인팀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기획, 개발기획 등 거의 모든 업무를 섭렵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장점들을 몸소 체험하는 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크게 만족해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내 꿈은 포기 못해!”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최 대표에게 곧 시련이 다가왔다. 2000년 이후 IT버블이 급격히 꺼지기 시작면서 그가 속한 벤처기업에도 재정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임금 체불이 몇 달씩 계속되는 일이 잦아졌고 설상가상으로 남편마저 본의 아니게 직장을 그만두게 돼, 첫 아이의 돌잔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만큼 그의 가정살림도 점차 궁핍해졌다. 하지만 그는 이 와중에도 좀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한 다국적 IT기업이 만만찮은 연봉을 제시하며 입사를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할 정도였다. 결국 최 대표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창조적 디자인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을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없는 살림에 빚까지 내 회사를 만든 그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창업 1년만에 그만두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숱한 어려움을 뚫고 퍼셉션을 국내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마케팅 및 디자인 관련 종합 컨설팅 회사로 키워냈다. 그런데 그가 밝혔던 ‘숱한 어려움에도 다시 마음을 되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조금은 엉뚱하다. 바로 회사명 때문이란다. 회사명으로 사용한 ‘퍼셉션(perception)’이라는 단어는 ‘인지, 지각’이라는 사전적인 정의 외에 ‘고객의 인지를 변화시키는 총체적인 활동’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클라이언트들의 브랜드 파워를 보다 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마케팅 및 디자인 관련 종합 컨설팅을 수행하는 회사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상의 의미를 가진 이름인 셈이다. 회사명을 버리기 아까워 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자는 게 회사가 이렇게 근사하게 클 수 있었던 근거가 됐다는 것이다.
행복을 퍼트리는 ‘Happy Virus’ 하지만 최 대표의 성공비결은 따로 있는 듯 했다. 바로 고객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고객에게 항상 최상의 모습을 보이려면 자기 스스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 대표가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고객만이 아니다. 회사명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회사가 어려웠을 때 직원들이 최 대표를 이끌고 포장마차로 가 오히려 더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를 했다는 일화도 평소 그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관리해왔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이에 비해 다양한 경험과 함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는 성공한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꿈은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것. 회사가 어려웠을 때 직원들이 거꾸로 자신을 격려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것도 이런 자신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단다. 실제로 퍼셉션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클라이언트들도 다들 놀란다고. 직원들이 그를 지칭하는 여러 별명 중 ‘Happy Virus’라는 단어가 있다는 게 수긍이 갔다. 인터뷰를 끝낸 후 다시 한 번 그로부터 건네받은 명함 뒷면을 봤다. ‘저는 당신에게 ○○○입니다’라는 부분에 최 대표가 예쁜 글씨체로 직접 쓴 ‘인터뷰이’라는 단어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